[산상수훈 팔복의 구조 및 세번 째 복]
1. 산상수훈 팔복 구조
산상수훈 중 팔복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산에서 하셨던 팔복 설교인데, 팔복이란 '여덟가지의 복'이라는 의미로, 이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와 해석들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팔복은 단순히 8가지 복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계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팔복은 마치 산을 오르는 하나의 여정과 같은 구조이고, 또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전체 여정을 하나 하나씩 보여주는 매우 심오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깊이 묵상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2. 팔복의 세번 째 복
(1) 첫번 째 복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깊이 다가와 천국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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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번 째 복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영적파산 선고를 통해 심령이 가난한 경험을 하게 되면, 저절로 애통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와 같이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바라보며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참된 위로를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죄와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와 해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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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자 - 애통한 자의 겅혐을 한 사람은 아래와 같이 온유한 자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의 의미]
주님께서 팔복 중 세번 째 복의 주체로 말씀하신 "온유한 자"란 문언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위 구절에서 사용된 '온유'란 야생마가 길들여저 순종하는 상태, 말에 재갈이 물린 상태의 의미가 있는데, 이를 유추하여 위 구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한 자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경험 → 애통한 자의 경험을 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영혼의 죄성과 비참한 실체를 깊이 마주하였지만, 도저히 아무런 방법이 없어 영적 파산상태에 이른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깊은 애통을 경험한 그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복음을 깊이 경험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어 참된 위로와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새롭게 태어난 기쁨을 누리게 되고, 이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격하게 되므로,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생기게 되고, 이를 위해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도 저절로 들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주며 너희 몸에서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에스겔 36장 26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예레미야 31장 33절)
위와 같은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 또한 당위성에 의해 주님의 말씀 또는 성경말씀에 순종하고자 노력하였을 뿐, 진심으로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이후에는 주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하는 마음이 솟아나 주님의 말씀과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깨닫게 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온유한 자의 복-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 및 애통하는 자의 경험을 통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위와 같은 사람에게 주시는 사명은 교회에서 주는 그런 사명이 아니라, 진짜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진짜 사명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위대한 일일 수도 있고, 아주 작거나 보잘 것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사명은 전부 하나님의 나라, 즉, 영혼 구원과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그 사명의 내용과 크기, 정도와 관계 없이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일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사람을 통해 주님은 주님의 권능과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삶 속에서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직접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시고, 자신과 동행하시는 주님 자체로 기뻐하고
비천하고 죄인이었던 자신이 이제는 주님의 나라의 통로로 사용되는 그 사실 자체로 즐거워하게 됩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위와 같이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진심으로 순종할 때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주님의 나라가 바로 그 사람의 유업이 되며, 나중에 천국으로 귀환할 떄,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상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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