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마치 산에 오르는 등산에 비유하지만, 실제 우리의 현실은 등산과 달리 고난과 통의 연속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의 어려운 시련과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의 문제가 다가오거나 고통이 다가오는 그런 느낌입니다. 성경 역시 우리의 인생을 등산이 아니라 마치 광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고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다가온 고통과 고난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장 17절)
어떤 성도는 복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체 왜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많은 교회에서 마치 복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게 된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대체 왜 고난을 받아야만 할까요?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은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광야에 들어가 무려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았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을 받게 된 그리스도인은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직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바로 광야입니다.
뜨겁고 모래바람과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그런 황량하고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런 광야....
신명기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 지 알려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신명기 8장 2절)
또한 신명기는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14-16)
대체 광야를 통해 무려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킨 후 주시는 복은 대체 무엇일까요?
많은 성경해석, 연구가들이 위와 같은 광야의 경험, 또 고난의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설명을 하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에 고난이 있는 것은 그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에 이르기 위함이고,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질 자체가 내가 하나님 처럼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며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인데,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악과를 다시 주님께 반납하고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연합되어야 할 때 진정한 부활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죄를 좋아하고 나의 자아는 그야말로 고래심줄 보다 질기기 때문에 내 인생에 찾아온 고난 없이 내 자아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님은 우리가 영적 파산에 이를 때까지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내 인생에 찾아온 고난을 통해 전심으로 내 모습과 실체에 대해 깊이 깨닫고, 영적 파산을 경험하여 내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결론 앞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내 인생을 온전히 드리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게 되고,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다시 연합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로마서 6장 5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사람은 자아를 부인하고, 죄를 이기며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살며, 이를 위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면서 살게 됩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신명기에서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고자 한 "참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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