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를 보면 여리고성 을 치기 전에 주의 군대 총사령관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갔을 때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당신은 우리 편이오, 적의 편이오?"
그가 대답했다.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주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여기 온 것이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 "주께서 당신의 종에게 보내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주의 군대의 총사령관이 대답했다. "그대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어라". 여호수아는 그의 말대로 하였다. (성서원 쉬운말 성경 여호수아 3: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전투 전에 하나님의 군대 사령관을 통해 들었던 주님의 음성은 바로 "네가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어라"는 말씀이었고, 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음성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네 신을 벗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라고 하시면서 네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위 말씀은 그 땅 자체가 거룩한 곳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이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신을 벗으라는 것은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이 거룩한 곳과 저촉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내가 신고 있던 신은 왜 거룩한 속성에 저촉이 되는 것일까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거룩함과 죄는 양립불가능하므로, 신발은 "죄"를 의미할 수 있을 수 있는데, 그 '죄'라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하나님 보다 더 신뢰하는 자신의 우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의 뜨거운 사막 지대에서 신발은 자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필수품이었고,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내가 살아가면서 의지하는 일체의 것, 즉 성경적 의미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것을 전부 내려놓기 전까지는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하루 아침에 사업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내 통장 잔고에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나 다름이 없으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것들은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또한 당시 고대의 풍습을 살펴보면,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책임을 가진 모세와 가나안 민족들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하시고 싶었던 말씀은 하나님이 바로 주인된 삶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시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종으로 겸손히 이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키고자 함이 아니어을까 합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핵심은,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이었던 "나"를 내려놓고, 가장 의지했던 어떤 것들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신앙생활 w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1) | 2023.01.22 |
---|---|
고난과 고통의 이유 (0) | 2023.01.16 |
나다나엘 이야기 -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노라 (0) | 2022.12.28 |
공산주의와 기독교 (1) | 2022.12.25 |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2) | 2022.1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