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인지, 참된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주일성수, 수요, 금요철야 등 예배 참석, 교회 봉사, 말씀묵상과 기도생활, 그리고 전도 등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인정한 참된 믿음은 완전히 달랐고, 예수님이 극찬한 믿음의 주인공인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사는 마태복음 15장 21절 ~ 30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위 기사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평소와 달리 냉정하고 심지어 모욕을 주면서까지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이야기하였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너무 상해 화를 내며 돌아갔을 텐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이 개라고 인정하면서 끝까지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의 딸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을 것이 분명하고, 그럼에도 낫지 않는 딸을 보면서,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진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문제는 오직 예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결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냉정한 2차례의 거절 및 모욕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믿음이 크다"라고 이례적인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신 '믿음이 크다'는 의미는 바로 '나는 할 수 없다는 결론과 그래서 오직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길이고, 소망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로 사는 사람을 의미하고, 오직 나의 유일한 소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여정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결론 앞에 서게 하시고, 눈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이고 소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큰 믿음을 경험하게 된 사람은, 인생의 방향이 확고하게 결정됩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넘어져도, 돌아서는 일은 없고, 오히려 그 때문에 예수님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삶의 방향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더 확고해 지게 됩니다.
이전에는 전도하거나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이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더 이상 증인의 삶이 부담스럽거나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내 삶이 성공했거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점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자였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삶의 유일한 소망이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큰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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