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팔복이란?]
1. 산상수훈이란?
산상수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 초기에 갈릴리 산 위에서 많은 군중들에게 한 설교를 의미하는 것인데 마태복음 5장 ~ 7장에 망라되어 기록되어 있고, 산상보훈, 산상설교라고도 합니다.
기독교 윤리의 대헌장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는 산상수훈은 당시 엄청난 감화와 영향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로 삼고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외우는 주기도문도 이 산상수훈 설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산상수훈 팔복의 의미 및 구조
그 산상수훈 중에서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팔복입니다.
팔복의 뜻은 '여덟가지의 복'이라는 의미로,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 또 그 복의 내용이 무엇인지 핵심적인 한 구절로 추상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팔복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존재합니다.
팔복의 기록을 읽으면 단순히 여덟가지의 복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으로 보이지만 팔복에 대해 묵상을 하다보면.
팔복의 구조는 단계적 구조로 되어 있고, 각 복이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팔복의 내용은 마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전체 여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는 구원 및 신앙이라는 산을 오르는 하나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
1.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육신적 또는 재정적인 가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내 영혼이 파산되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것은 나의 삶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건강, 돈, 자녀, 배우자 등)으로 인해 마음이 힘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영혼이 주님을 떠났고, 그로 인해 내 영혼이 너무나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직면하였는데, 도저히 아무런 방법이 없어 고통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신론자 뿐만 아니라,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던 신자들에게도, 어쩌면 그와 같은 성도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참된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즉, 나의 노력과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정작 주님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았고, 내 영혼은 길을 완전히 잃어버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적인 파산상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 은혜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삶인데,
일반적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 경우 교회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오히려 주님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한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나면 지치거나 무감각해 지는 경우가 많고, "정말 이런 것이 신앙생활인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인해 많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교회생활 가운데 주님과 교제를 하면서 이 땅에서 천국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과 더 친밀한 교제로 들어가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참된 실체와 진짜 죄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첫 사랑의 기간에 있거나 주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내 자신의 참된 실체와 죄성을 보기 어렵고, 주님으로 인한 행복과 사랑이 나로 인한 것이라 착각하거나 내 신앙의 수준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만약 나의 진심의 갈망과 소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와 연합이었다면,
주님께서는 나의 진심과 갈망어린 기도를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삶 속에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시거나 임재를 완전히 걷어 가시는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진짜 나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 아무런 선한 것이 없다는 것과, 또한 심히 절망스럽고 방법이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것을 직면하였는데,
황당하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내 자신을 높이며 내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주님과 사람 앞에 서고 있는 내 자신의 실상과 연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의 죄된 실체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경험하고 깨닫고, 나는 도저히 죄로 물든 나의 자아를 고치거나 바꿀 아무런 힘과 능력도 없고,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없다는 완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바로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는 말씀이 나에게 실제로 다가오게 되며
필연적으로 다른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내 자아가 죽어야만 지긋지긋했던 내 모습이 끝이 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주님 앞에 간절한 소원이 나의 자아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며
믿음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실 때 나의 자아도 같이 못 박혀 죽었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2.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위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경험을 통해(영적파산의 경험) 믿음으로 나의 자아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경험을 하게 되면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주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경험 또한 하게 됩니다.
위와 같이 영적 파산에 이르러 나의 자아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나면,
주님의 부활과 함께 연합하여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신앙생활이 시작되며 팔복에서 이야기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팔복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의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영역의 개념이며, 그것은 주님을 경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전에는 교회생활이 신앙생활로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이 전부였으며, 삶의 목적은 나의 성공과, 부요함 등이었는데,
영적파산 경험을 통해 십자가에 내 자아가 죽게 된 이후에는 하나님이 나의 참된 아버지로 믿어지기 시작하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참된 정체성을 찾은 감격 속에서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을 향한 사랑이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하여 나 또한 그런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갈망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즉, 삶의 목적과 방향이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180도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를 거듭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나" 중심으로 살아가며 오로지 나의 만족을 채우며 살아갔을 때에는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채울 수 없었고, 오히려 허무함과 공허감이 있었는데,
거듭남의 경험을 통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 주님을 경험하며 살아갈 때에는 삶의 환경 등과는 크게 관계 없이 내 영혼을 뒤덮는 충만함과 평안함, 그리고 자유함을 경험하게 되고,
"내가 이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이구나"하는 감격도 느끼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되고,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천국을 경험하는 사람이 나중에 육신의 죽음에 이를 때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팔복설교의 다른 복들의 의미]
1. 팔복의 2번째 복인 "애통하는 자의 복"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아래 포스팅을 클릭해 주세요.
2. 팔복의 3번째 복인 "온유한 자의 복"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아래 포스팅을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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