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인생과 신앙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인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이름이 바뀐 사건은 창세기와 호세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28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호세아 12장 3절~4절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그런데 선조들의 믿음을 평가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야곱의 믿음에 대하여 얍복강가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11장 21절).
그 외에도 야곱이 에서보다 영적인 장자, 축복을 더 사모했던 장면, 라반의 집에서 큰 부를 이룬 장면, 에서와 화해한 장면 등 많은 장면들이 있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왜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하면서, 그 믿음의 정점을 왜 요셉의 아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한 것이라고 기록한 것일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야곱의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던 얍복강가 사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깊이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2가지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야곱은 과연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한 것인가?
2. 믿음의 사람으로 보기에 문제가 많았던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신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하나 하나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1. 야곱은 과연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한 것인가?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스라엘’(יִשְׂרָאֵל)의 히브리어 구조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1) יִשְׂרָא (이스라 / yisra) : 동사 **שָׂרָה (사라)**에서 파생되었고, 그 의미는 '다스리다, 주권을 행사하다, 주도권을 잡다'는 의미인데, 이 '사라'라는 동사는 사람이 사람과 다투어 이겼을 때 사용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행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אֵל (엘 / El) : 하나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핵심은 주어가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았고, 위와 같은 '사라' 동사의 의미와 쓰임새를 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신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의미가 더 정확한 의미라고 보이고, 그와 같이 해석하는 구약학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본문에 “כִּי שָׂרִיתָ עִם־אֱלֹהִים”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사라하였다)는 구절은, 문법상으로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하였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선언하는 것으로, '야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로 들어왔다', '야곱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관계적인 선언으로 보는 것이 모든 문맥과, 히브리어 원어적 의미에 비추어 타당한 해석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되었는데,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하였다는 것은 문맥상 맞지도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이긴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정리하여보면, 야곱이 이겼다고 하는 것은 힘의 논리에 따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끝까지 매달리고 붙들어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관계적 삶으로 전환된 것을 이긴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며 자아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구주이자 참된 왕이 되실 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그 분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것일까?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울며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었는데, 환도뼈가 위골된 것은 야곱의 모든 힘과 능력이 꺾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며 매달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들어왔다고 선언하십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었지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왔었는데, 현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매우 두려운 상황 아래에 있었고, 그 무렵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오히려 야곱의 힘과 능력의 원천을 모두 꺾어 버리신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과 더불어 자신의 힘과 능력이 모두 끝난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야곱을 귀하게 본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크고 놀라운 사역을 한 사람보다, 자신의 자아의 죄성과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꿇고 굴복한 사람을 더 귀하게 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고 자신의 인간적인 꾀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매달린 그 순간을 귀하게 보시며 인정하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온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하시며, 정체성을 바꾸어 주시기 위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야곱이 연약했지만, 절망속에서도 부서진 채로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바로 평생의 정체성이라는 선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 이후에도 자신의 딸 디나와 관련된 사건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고, 라헬의 드라빔(우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며, 요셉을 편애하는 등 많이 넘어지고 연약하며 자신의 예전의 인간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이스라엘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와 승리하는 사람'을 의미하였던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은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다는 완성이나 변화의 선언이 아니라, 관계가 변했다는 선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24절에서도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와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이름을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도 '이스라엘'이라고 명명하신 것입니다.

3. 히브리서에서 인정한 야곱의 최종 믿음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믿음의 극적 장면들이 제법 있습니다.
위와 같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사건, 에서와 극적인 화해 사건,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재회한 사건, 빈손으로 도망갔다가 큰 재산을 이끌고 나온 모습 등등
그러나 히브리서는 위 장면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라고 기록하며 다소 초라해 보이는 장면을 믿음의 정수로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야곱은 이 사건 이후로 평생을 절뚝이게 되었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는 상처가 아니라 다시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는 표식이자 일종의 하나님을 만난 사건의 기념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환언하면, 야곱은 강해지고 부유해지면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연약해져서 하나님만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것이고, 지팡이를 통해 항상 이것을 기억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왔다갔다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 의존했던 삶을 살았고, 인생의 마지막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의 결론은 '나는 연약해서 하나님께 의존하였고, 하나님께 붙들린 것이 내 인생의 결론이었으며, 자신의 마지막을 하나님 한 분만 예배하고 높이는 것으로 남긴 것이었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것이 야곱의 진정한 믿음의 정수였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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