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한 '구원'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고,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구원보다 다른 교리나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어서 인간의 구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고,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셨음에도, 구원의 문제에 대해 경시하는 것을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분명히 천국가는 것이 좁은길이고 쉽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음에도, 교회만 다니면 천국가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구원에 대해 우선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구원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여정이다.
구원은 일회적,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말씀하셨고(빌립보서 2:12), 예수님께서도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하시면서, 좁은문, 좁은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히브리서 3:14).
사도바울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고백하면서, 구원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여정으로 그렸습니다(빌립보서 3:12)
따라서 구원은 일회적 사건으로 평생의 구원이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도 아니며, 평생동안 경주해야 할 마라톤과 같은 여정으로서 구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구원에서 이탈될 수 있으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구원의 시작 - 부르심
구원의 출발점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1) 말씀을 통해
(2) 어떤 사건과 만남을 통해
(3)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질문을 통해
이 부르심은 “너의 구원을 위해 돌이키라는 사랑의 요청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2:9).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구원의 길로 부르고 계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3. 구원에 이르는 회개
구원을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생각·방향·삶의 중심이 바뀌는 전환을 의미합니다.
탕자가 자신의 처지를 깊이 뉘우치고 풍족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단하고 몸을 돌이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결국 아버지와 재회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것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해 많이 말씀하시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이 나였던 삶을 회개하고, 내 삶의 주인을 바로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6:24).
위와 같이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반드시 그 삶의 주인이 존재하고, 회개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겠다거나,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의 주인과 섬김의 대상을 바꾸는 영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로마서 10:9).
따라서 만약 내 삶의 주인을 바꾸지 않는다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지 않은 것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지 않았음에도, 회개하였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4. 믿음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막연한 지적 동의(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7:21). 즉, 예수님에 대해 단지 지적으로 알고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선을 행할 의지도, 능력도 전혀 없고, 인생과 신앙생활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오로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로 이끄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우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2:20).

[참고 :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믿음]
야곱의 믿음
야곱의 인생과 신앙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인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이름이 바뀐 사건은 창세기와 호세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28절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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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화
위와 같이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자 광야가 시작된 것처럼, 구원받은 삶을 장미빛 미래가 아니라, 광야와도 같은 길을 걷는 것이고, 광야를 통해 우리는 점차 성화되어 갑니다.
성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그 과정에서 다듬어지며, 우리가 완전히 엎어지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의 주인을 바꾸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믿을 때,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실제적으로 이끄시며, 우리의 성품과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십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갑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었으므로, 이제는 어느 정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고 하고 있고, 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지만, 성경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갈 때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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