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 발에 향유옥합을 쏟아 부은 죄인인 한 여자의 기사가 등장합니다.
(참고로 위 여인에 대해 마리아, 베다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죄인인 여인은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를 받은 예수님을 찾아와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7, 38)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가 사함을 얻었으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48, 50)
위 여인이 구원을 받을 믿음은 어떤 것일까?
많은 분들은 향유옥합이 매우 비싸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실제로 다른 성경에서 300데나리온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 이었으므로, 향유는 엄청난 명품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여인의 경우 결혼 첫날밤을 위해 고가의 향유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향유가 자신의 전 재산이자 가장 소중한 물건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와 같은 향유를 예수님 발에 쏟아 붓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주님 앞에 드린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관점에서 위 여인의 믿음을 살펴보고자 하고, 과연 예수님이 왜 구원받을 믿음이라고 했을지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추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위 여인의 정체를 "죄인인 한 여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문화풍습을 살펴보면 그 여자는 창녀였을 가능성이 많고,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이웃 모두가 그 여자를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리새인 집을 찾아갑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당시 이스라엘 배경을 살펴보면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리새인은 "구별되다"라는 의미로, 율법을 지켜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죄인들을 매우 경멸하여 죄인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죄인인 여자가 그와 같은 바리새인 집으로 찾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여인의 입장으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왜 그런 바리새인 집을 찾아갔을까요?
아마 그 여인은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경멸을 받아오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고, 자신 스스로도 이미 포기하였을 지도 모르는 삶에서 아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고, 죄인의 친구가 되시는 그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런 예수님이라면 자신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지 않고, 죄인이라고 정죄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바로 그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을 벌레 보듯이 혐오하는 바리새인 집으로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그보다 훨씬 중요하였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죄인인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리새인의 집에 찾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그와 같은 믿음과 갈망을 보시고 그 여인의 영혼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반면,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 여인이 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예수님과, 구원을 선포하는 예수님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지만, 죄인인 여자는 초대받지 못한 자리에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영혼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무런 조건과 자격이 없지만, 바로 전심으로 예수님을 찾고 또 찾는 것이고, 그 이유는 내가 가능성 없는 죄인이며, 바로 예수님만이 나를 받아주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상관 없이,
내 전부를 잃는 두려움에도 관계 없이
예수님을 만나러 가게 되는 것이고,
그 때 예수님께서 나를 만나 주시며, 내 삶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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